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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춘추시대 : 봉건제도가 약해지다

by 로위너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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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제후들에게 영토를 주고 다스리게 하는 봉건제도를 택한 주나라. 이는 수많은 제후국을 탄생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왕권 약화를 불러오게 된다. 

 

춘추시대

주왕이 봉한 제후국은 총 140여 개나 되고, 그로 인해 왕권은 약해지며 전쟁도 1,200회 이상이나 발생한다. 춘추 말기엔 진(秦), 초(楚),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연(燕)의 7개국이 남게 된다. 춘추시대의 특징을 하나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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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족형 전차전

은나라, 주나라 시대의 전쟁은 주로 황하 중하류 평원지대에서 벌어졌다. 그래서 평원지대를 전차가 달리며 전투를 벌이는 전차전의 형태가 대세였고 보병은 보조적인 역할만 했다. 당시 군인은 아무나 못하는 귀한 직업인지라 귀족이 상비군이 됐고, 전시엔 성 안에 사는 평민인 국인(國人)도 참여했지만 성 밖의 평민인 야인이나 상인, 노예 등은 전쟁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니 전차전은 귀족형 전쟁으로 전차가 죽 늘어선 상태에서 북이 울리면 공격이 시작되는 일정한 진법에 따라 진행됐다. 전투 도중에도 예를 지켰으며 신의와 용맹을 중시했다. 그러나 춘추시대 말기에 이르면 평원에서만 전투를 치르지 않게 되고 전쟁이 워낙 잦다 보니 기병이나 보병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2) 춘추오패

수많은 제후국의 난립으로 주나라의 권위가 무너져가던 이때,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패자가 등장해 중원을 쥐락펴락했다. 이 패자를 중심으로 여러 제후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춘추시대 때 5명의 유명한 패자를 '춘추 5패'라고 부른다.

 

춘추오패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최초로 패자가 된 제(齊)나라의 환공, 진(晉)나라의 문공, 진(秦)나라의 목공, 초(楚)나라의 장왕, 오(吳)나라의 부차, 월(越)나라의 구천을 말한다.

 

(3) 철기 기술

오나라와 월나라는 일찍이 철기 기술을 습득하고 보병 중심의 새로운 전법을 터득해 보다 강해졌다. 오나라와 월나라엔 명검이 있단 전설이 있는데, 근래에 정말 월왕 구천의 검이 실제로 발견됐다. 2,400여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예리하고 빛나는데다 칼날엔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4) 훌륭한 재상

각 제후국의 군주들은 명문귀족들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평민 출신 인재들을 과감히 등용해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화를 꾀했다. 즉 강력한 패자 뒤엔 훌륭한 재상이 있었다. 제나라 환공에겐 관중과 포숙이, 오나라 합려와 부차에겐 오자서가, 월나라 구천에겐 범려가 있었다. 이와 관련되어 나온 속담이 관포지교와 와신상담이다. 자세히 알아보자.

 

 

 

 

① 관포지교

제나라의 포숙과 관중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포숙은 관중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하지만 포숙은 공자 규를, 관중은 공자 소백을 섬겼다. 이렇듯 서로 미는 황제감이 달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결국 포숙이 지지한 공자 소백이 제나라의 환공으로 즉위하게 되고,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관중을 사형하려 한다. 하지만 포숙이 나서서 제후들을 다스리려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그를 살려두길 권한다. 환공은 포숙의 말을 따라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한다. 포숙의 예견대로 제나라의 환공은 관중의 정치에 힘입어 첫번째 패자가 된다.

 

포숙과 관중의 일화에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뜻하는 속담 관포지교가 유래했다. 

 

② 와신상담

오나라의 왕 합려가 월나라의 왕 구천을 공격하다 대패하며 전사했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이를 갈며 매일 가시 장작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자기 방에 드나드는 사람마다 "부차야! 구천이 니 아비를 죽인 걸 잊었느냐?" 라고 외치게 했다. 부차는 매일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긴 끝에 월나라를 침공해 구천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오나라의 정치가 오자서는 부차에게 구천을 죽이라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을 들어 구천을 살려주고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 출신이었으나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억울하게 죽은 뒤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에 정착한 인물. 

 

월나라의 구천은 부차에게 풀려난 후, 방 천장에 쓰디쓴 곰 쓸개를 매달고 매일 핥으며 부차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어느 날 월나라에 흉년이 들자 구천은 오나라에 구휼을 요청한다. 오자서는 쌀을 보내지 말라 반대하지만 부차는 월에 식량을 보내준다. 이와중에 오자서는 점점 부차와 사이가 틀어져, 부차의 명으로 자결하게 된다.

 

 

 

 

이듬해엔 반대로 월나라는 풍년, 오나라는 흉년이 들자 부차는 월에 사신을 보내 곡식 지원을 요청한다. 구천은 주기 싫었지만 신하 범려의 조언으로 가장 좋은 곡식들을 살짝 쪄서 보내준다. 겉보기엔 좋은 종자여서 부차는 구천이 보내준 곡식을 전국에 보내 농사용 종자로 삼게했지만... 찐쌀에 싹이 틀리 없으므로 다음해엔 더 큰 흉년이 닥치게 된다.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를 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적 있으니 부차를 살려주지만 부차는 치욕감에 자결한다. 부차는 죽기 전에 죽은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채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나라는 멸망한다. 이처럼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일화에서 "원수를 갚거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괴로움을 견딤" 뜻을 지닌 와신상담이란 속담이 유래했다.

 

(5) 약해진 봉건제도

제후국들끼리 싸움이 난립했지만 각 제후들은 주나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나라의 왕이 스스로 왕이라 칭한 후 다른 제후들까지 왕을 자처하고 나서자, 겉으론 주 왕조를 존중하던 봉건제도가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라지게 된다.  

 

특히 주 왕조가 직접 제후국으로 봉한 진나라가 내부 하극상으로 분열하며 봉건시대가 공식적으로 종결된다. 오직 약육강식으로 강한 나라만이 살아남는 전국시대가 열리게된 것이다.

 

전국시대는 진(晉)나라가 위(魏), 조(趙), 한(韓)의 3국으로 분열됐던 기원전 453년, 혹은 주 왕조가 이를 공인한 403년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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