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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개념 정리

하나라, 은나라(상나라) : 여색과 폭정으로 망하다

by 로위너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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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 시대엔 왕이 자손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왕이 자식인 계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삼황오제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왕조 시대가 열린다.

 

하나라

하나라

하나라(기원전 2070 ~ 기원전 1600년)는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하지만 하나라는 중국 내에서만 인정하지 다른 국가에선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왜냐면 하나라가 존재했단 것을 증명할 기록이나 유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

 

그러나 중국은 얼리터우 유적지가 발견되어 이게 하나라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 외 다른 나라에선 명확한 증거가 없어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편.

 

(1) 걸왕

하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하나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걸왕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폭군으로 유명하다. 미인 후궁으로 궁을 가득 채웠으며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용봉이란 충신이 걸왕에게 "천자께서 도를 잃으면 천하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겁니다." 라고 간언했으나 걸왕은 "태양이 없어지는 걸 본적 있느냐?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난 결코 망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용봉을 죽였다.

 

(2) 말희

말희는 원래 산동 유시씨의 딸이었는데 걸왕이 유시씨를 토벌할 때 항복하면서 헌상되었다. 말희는 절세미녀여서 걸왕은 그녀를 왕비로 삼아 원하는 건 다 해주려 했다.

 

말희가 요구한대로 경궁(傾宮)이라는 거대한 궁전을 세우고 연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술로 채운 연못에 나무에는 고기를 매달은 주지육림이 행해졌다. 또 말희는 비단 찢어지는 소리를 좋아해서 걸왕은 고가의 비단을 모아 찢었다.

 

(3) 탕왕의 은혁명(=하상혁명)

보다못한 탕왕이 군대를 일으켜 하나라를 무너트리고 은나라(=상나라)의 시조가 된다. 걸왕과 말희는 생포된 뒤 남소의 산으로 추방되어 거기서 생을 마친다. 이것을 은혁명 또는 하상혁명이라 부른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걸왕이 완과 염이란 두 미녀를 걷고 말희를 낙수에 버리자, 앙심을 품은 말희가 은나라의 이윤과 만나 하나라에 내분을 만든 뒤 걸왕이 결국 은나라에 멸망했단 자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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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상나라) 

은나라

그 뒤 들어선 왕조가 탕왕이 세운 은(상)나라(기원전 1600 ~ 기원전 1046년)이다. 은나라=상나라로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허여서 은나라라고도 한다. 은나라도 처음엔 하나라와 함께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서 나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역사 속 시대로 공식 인정받게 된다. 

 

(1) 청동기 시대, 제정일치 사회(갑골문)

은나라는 아직 청동기 시대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나라는 제정일치 사회였다. 나라의 국가대소사를 점을 쳐서 결정했고 이런 것을 주관하는 곳은 국가공식기관이거나 임금이었다. 

 

갑골문이 그 증거이다. 갑골문은 거북이의 등껍질이나 소의 어깨 뼈에 새긴 글자를 말한다. 이 갑골문의 글자들을 보며 나오는 날짜와 결과 등으로 점을 친 것이다. 

 

(2) 주왕, 달기

은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왕은 은나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주왕이다. 이름은 제신으로 아버지 제을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은나라의 왕이 되었다. 외모가 준수하고 총명한데다 군사적 재능도 있어 다수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하나라의 걸왕이 말희에게 빠져 나라를 망조에 들게한 것처럼 주왕도 달기라는 애첩에게 빠져 향락을 즐기고 나라를 망조에 들게 한다. 주왕과 달기가 한 짓은 다음과 같다.

 

방탕한 생활 : 주지육림, 녹대

하나라 걸왕과 말희도 즐겼던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술로 가득 채운 연못과 나무에 비단으로 고기를 매달아놓은 걸 말한다. 주왕은 달기와 함께 배를 타고 노닐며 손이 가는대로 고기를 따 먹었다. 

 

녹대는 주왕이 재물을 모아두던 곳을 말한다. 180m의 높이, 둘레 800m의 호화로운 녹대를 7년에 걸쳐 만들게 했다. 이걸짓는다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 백성들의 원망이 극에 달했다. 

 

온갖 잔인한 기행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달기. 주왕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달기에게 맞춰보라 한 후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달기가 성인의 심장엔 구멍 7개가 있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의문을 갖자 자신에게 간언을 하던 충신 비간을 죽여 심장 상태를 확인했다. 

 

은나라엔 왕을 보필하던 최고 관직인 삼공 세명- 구후, 악공, 서백창이 있었다. 난잡한 음행을 그만두라 간언한 구후를 죽여 젓갈로 만들자 악공이 이를 비판했다. 그러자 악공도 죽여 포로 만들었다. 혼자 남은 서백창이 이를 보고 탄식하자, 간신 숭후호가 이를 주왕에게 일러 주왕은 서백창을 유리 지역의 감옥에 가두게 된다.  

 

③ 이색 고문 : 능지형, 포락지형, 채분지형

희창(=서백창)이 유리 지역에 유폐되자, 그의 장남인 백읍고가 희창을 구하려고 주왕을 알현해 공물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달기가 백읍고를 유혹하려다 안 되자 그가 자신을 해하려 했단 누명을 씌워 백읍고는 능지형을 받아 죽고만다. 능지형은 산 채로 살점을 뜨는 매우 잔인한 형벌이다.

 

심지어 죽은 백읍고의 시체로 육병을 만들어 희창에게 보낸다. 희창은 백읍고의 시체로 만든 음식인 걸 알았으나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그걸 다 먹는다. 그리고 주왕에게 풀려나 서기에 도착한 후, 먹은 육병을 모두 토해내자 이것들이 다 하얀 토끼로 변했다고 한다.

 

포락지형(炮烙之刑)은 주왕이 자신에게 간언하는 신하에게 내린 형벌이다. 뜨거운 숯불 위에 놓인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미끄럽게 한 뒤 신하들을 그 위로 걷게 했다. 그들이 기름에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자, 주왕은 신하들이 타 죽는 모습을 달기와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채분지형은 깊은 구덩이에 사람들을 밀어넣은 뒤 독사와 전갈을 넣는 형벌을 말한다. 주왕은 연회를 즐기며 비빈들에게 나체로 춤을 추라 명했는데 72명의 비빈들은 울면서 주저하니, 달기가 왕의 명을 어찌 무시하냐며 화내고 구덩이에 이들을 밀어넣어 독사와 전갈을 푸는 채분지형을 내렸다.  

 

(3) 은주혁명 : by 희발, 강태공

마침내 참다못한 제후들이 규합해 일어난다. 제후들의 맹주 격인 서백창의 둘째 아들 희발이 강태공이란 군사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워 무왕이 된다. 이를 은주혁명이라 한다.

 

주왕은 호화스런 녹대에 불을 질러 그 속에서 불 타 죽었다고 한다.

 

(4) 백이숙제

은나라 말기에 산 형제로 끝까지 왕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의인이다. 서백창이 죽고 그의 둘째 아들 희발이 강태공과 함께 군대를 모아 은나라를 치려하자 어찌 신하된 사람이 임금을 주살하려 하는가 하며 간언했다.

 

희발은 개빡쳐서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했지만 강태공은 그들의 의로움을 두둔하며 만류한다. 이후 희발은 은나라를 무너트리고 주나라의 무왕이 된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걸 부끄러워해,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불식주속 不食周粟)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었다.

 

그러다 왕미자라는 사람이 주나라 곡식은 안 먹는다면서 주나라 고사리는 괜찮은거임? 이라고 비판하자 백이숙제 형제는 고사리도 안 먹게되다 끝내 굶어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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